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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역사 - 고대부터 중세

mohalka mohalka.com 2020. 2. 27. 15:32

바빌로니아에서 BC 2000년 전에도 은행과 같은 역할을 국가가 신전을 통한 체계를 만들어 놓음. 보통 농사에 관련된 채무채권관계가 발생함. 이자를 주고 받기 보다는 농업을 위한 자본을 잠시 빌려주고 생산물로 원금을 회수. 신전을 통한 은행 체제는 신뢰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기에 해당 역할을 했다고 보여짐. 

이 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은행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춘 사실들이 발견 됨. 로마의 경우 그리스의 신전을 통한 은행 시스템을 도입. 로마시대 줄리어스 씨저가 최초로 땅을 압류 할 수 있는 법을 만듬. 중세시대 십자군기간 동안 고리대금이 유행함. 로마시대에는 군인들도 고리대금업을 행하였고 귀족들도 타국가 왕이나 유지들에게 고리대금업을 함. 

인도, 중국 등에서도 여러 은행과 비슷한 일을 하는 단체나 개인 그리고 국가기관이 있었음. 고려시대에는 사찰 등에서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였으나 훗날 고리대금으로 발전함.  

유럽 중세시대가 시작되면서 상업이 죽고 금융업도 사장됨. 중세가 끝날무렵부터 재등장. 

12세기 북부 이탈리아, 베니스와 제네바와 같은 도시 국가들에서 현재와 비슷한 은행업이 활발해짐. bank의 어원은 독일monte, mote

어 돈뭉텅이, 빛 이었으며 이탈리어화되면서 banco. 이탈리아 북부는 당시 독일 계통 롬바르디안계에게 점령 당함. 또는 불어 banque는 bench, 의자라는 의미로 은행업무가 이루어지던 곳이 의자라서 그렇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고도 함.  

 

당시 유럽에서는  롬바르디안과 유태인이 가장 유명. 이탈리아인들은 교황의 은행으로서도 업무를 봄(세금) 천대받는 직업은 아니었으나 미움받는 직업이었던 걸로 보임. 네덜란드의 홀란드 지방, 안트워프도 금융의 중심지로 거듭남.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이자를 받을 수 없음. 하지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가능함.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땅을 얻을 수 없음. 대부분 도시에 거주. 이자를 통해 수입을 얻음. 

카톨릭도 고리대금업을 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법이 약해짐. 종교개혁으로 카톨릭세가 약해진 북유럽 신교도들을 중심으로 이자를 통한 수입이 가능해짐. 

이슬람도 이자금지. 현재에도 이자를 받지 않는 이슬람 은행이 있지만 수수료 또는 기타 이자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수익을 추구. 

현대 은행의 아버지는 중세유럽의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상업은행. 중세시대 옷감을 상품으로 삼은 상인들을 위한 은행이었음. 다수의 유대인들이 이 사업에 뛰어듬. 이자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유대인은 사업에 유리했음. 땅도 가질 수 없었음. 유대인들은 농부들에게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여 가뭄이나 기타 농사실패를 대비 또는 피하기 위해 융통해줌. 시간이 지나고 작물을 기반으로 한 선물도 하기 시작함. 작물 브로커들 사이에서 예금을 표현한 노트, 예금증(비예트-티켓)이 거래가 되기 시작함. 이는 환어음과 체크의 시초가 됌.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17세기 무렵 금세공인들도 금융업에 뛰어듬. 금세공업도 기독교인에게는 금지 됌(더 자세한 자료 필요함) 

유대인 게토 모여 삼, 땅을 가질 수 없음.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 로스차일드 등장. 칼 맑스도 유대인. 

환어음이란 어음의 발행인(drawer)이 지급인(drawee)에 대하여 일정 기일에 일정금액을 일정장소에서 지시인 또는 소지인(bearer)에게 무조건 지급할 것을 위탁하는 요식증권이며 유통증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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