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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을 해부하면 검은 피가 난다. 그것이 욕망이다 - 김기영

​기생충이 불편한 이유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이 그저 우리 네의 검은 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봉준호 하녀와 충녀 등으로 유명한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참고 했다고 한다. 기생충의 세트는 하녀의 복층 양옥집을 생각나게 한다. 김기영 감독은 의사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영화를 통해 인간을 연구하고 보여주려 했던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일관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돌아가고 있는지 본인의 생각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 한다.  

 

살인의 추억은 미국에서 날라 온 종이 한 장에 사건이 종결된다. 괴물은 미국이 시작한 행동이 어떤 영향을 주고 결말을 맺는지 보여준다. 설국열차는 대 놓고 서구사회가 짜놓은 세상을 보여준다. 옥자에서는 세상 전체가 서구 자본주의 틀에서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사회 또는 세상에 대한 시각에서 한 단계 밑으로 내려가면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지리멸렬부터 시작된 봉준호 감독의 주제는 일관되다. 모든 인간은 까놓으면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는 있어 보이는 학자도, 살인법을 쫓는 형사도, 괴물을 잡는 소시민도, 기차를 개혁해내려 했던 영웅도, 동물을 사랑하는 학자도,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분류되는 모든 인간도 결국 같은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의 주제도 아니고 대놓고 중요하게 조명된 적은 없지만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기부여가 하나 있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틀로 본다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또는 권력관계 작게 들어가면 각 인간 군상을 움직이게 하는 돈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곧 생존의 바탕이고,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되고 권력의 핵심이 된다. 돈이 어떻게 등장인물들을 움직이고 동기가 되는지 보여준다. . 

 

이전 영화들이 틀의 크기를 점점 늘려 왔다면 기생충은 다시 틀을 줄여 만든 영화다. 기생충은 세상을 보여주려 하기 보단 그 세상을 만들고 있는 우리를 보여주려 한다.

 

기택의 집은 평범한 동네의 반지하다. 무너져가는 중산층 또는 중산층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하류층을 위한 공간이다. 박사장이 사는 동네는 부유한 동네이며, 그의 집은 지하와 복층으로 이루어진 집이다.  공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박사장의 가족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족이다. 박사장이 모든 전권을 휘두르며 아내는 남편의 눈치만을 본다. 박사장은 교포 또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아내는 영어에 집착하며 되지 않는 영어를 하려 노력한다. 

기택의 가족은   중산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네들이 박사장의 집에 자연스레 묻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있다. 아들 기우와 기정은 똑똑해 보인다. 하지만 자녀들이 실력을 제대로 펼치지   이유가 가난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에 능력이 없어서인지는   없다. 그리고 기택의 가정은 가부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대부분의 힘은 아내에게  있다. 

문광의 가족은 중산층이 무너져내린 하류층이다. 가장은 이미 문광이며 남편은 가족의 일원으로 아무 힘이 없다. 가난으로 인해 아이를 포기했다. 하류층의 삶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기택의 가족에게도 무시와 연민을 동시에 받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을 불안하게 한다. 기택의 가족이 치는 사기를  때마다 매번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또한 기택의 아슬아슬한 선타기 또한 갈등을 고조시키며 관객을 긴장 시킨다. 하지만 갈등이 박사장과 기택이 아닌 기택과 문광의 가족 사이에서 터진다. 누가 기택의 집에서 먹고   있는 기회를 가질지, 가지지  한자는 지하실이라는 곳에서 머물게 된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갈등한다. 하지만 박사장의 가족은 이를 전혀 알지  한다. 

  영화들과는 다르게 미국이 전면에 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송버튼이 이를 상징한다. 거기서 거기엔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이 박사장의 가족에게   보이기 위해 싸울  이를 암시하는  하다. 전송 버튼을 누르면 결국 피해를 보는  문광과 기택의 가족 전부다 이다. 하지만 문광의 가족은 박사장에게  보일 기회로 생각한다.기택의 가족은 자신들의 사기극이 걸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는 마치 권력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하다.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기 때문이다. 문광과 기택의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위협하고 심지어는 죽이려 한다. 엄밀히 말하면 가장  피해자는 박사장 가족이다.  들의 집에 침임해 삶을 파탄 내는 쪽은 사실 기택의 가족이다. 

기택의 가족 또한 자신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도구로서 박사장의 가족을 바라본다. 박사장이 기택의 가족을 도구로서 보듯, 기택의 가족도 틈새가 생기면 언제든 박사장 가족을 딛고 일어나 그들의 재산을 먹고 그들과 동급이   있다고 믿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그들 스스로 자처한 노동을 창피해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영화는 무너져가는 가부장제 또한 보여준다. 기택의 아내가 기택을 바퀴발레라 표현 했을 때도 기택은 참아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집주인이 없을  몰래 냉장고의 음식을 훔쳐 먹는 바퀴벌레같은 신세로 전락한다.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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