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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Society

매드 맥스 : 분노의 질주

mohalka mohalka.com 2015.06.17 00:49


그로테스크의 극치, 군더더기 없는 인물과 상황묘사 그리고 여성과 함께 액션영화를 즐길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영화를 본 후의 감상평은 '시선을 땔 수 없었다' 라는 진부한 표현을 빌려 쓰게 만든다. 화려한 액션과 그로테스크한 영상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저 넋을 잃고 영화를 보는 수 밖에 없다. 추격과 총격이 2/3 이상을 차지하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식상하지도 않다. 많은 걸작영화들이 보여 준 액션을 한 단계 넘어섰다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추격으로 시작하여 자동차 추격으로 끝나는 액션에 더해진 그로테스크한 (기괴하고 터무니 없는 그리고 불쾌하기까지) 영상미는 남자들을 열광시킬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심지어 액션장면도 그로테스크한 부분이 많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의 모습과 자동차 그리고 배경 모든 모습들은 그로테스크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듯 하다.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생각나는 영화 '판의 미로', 매드 맥스는 판의 미로와는 색이 전혀 다른 마초성을 극까지 끌어 올린 그로테스크를 보여준다. V8을 외치며 전투 중 전사가 최고의 목표인 워보이부터 주인공들을 추격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까지 남자들이 열광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형과 행동, 그 기괴함들의 끝에 있던 기타리스트의 모습에 멋지다라고 생각하지 않은 남자가 몇이나 될까. 



영화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불을 뿜는 기타를 맹렬하게 연주하는 이 남자의 모습은 영화 속 그로테스크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의미로 이 기타리스트를 영화에 등장시켰는지는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상적인 면에서 보자면 기타리스트가 보여주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영화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백미 중 하나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머릿속에는 기타리스트의 이미지가 아주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기괴함이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증명한 영화가 매드 맥스 : 분노의 질주다. 다른 액션영화들과 궤를 달리 하는 화려한 자동차 추격신만큼이나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은 색다름 그 이상을 넘어 눈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상미와 더불어 이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다. 영화의 대부분이 추격신과 전투신으로 채워진 탓도 있겠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질구레한 대사는 하지 않는다. 대사가 많은 인물이 별로 없다. 간결한 대사와 명확한 행동들이 인물들의 성격과 성향 그리고 동기를 표현 해준다. 맥스(톰 하디)를 쫓아 다니는 환영들은 세기말의 세상 속에서 어째서 맥스가 인간미를 놓치지 않고 있는지를 설명 해 준다. 살아 남아야 하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개인의 생존과 타인과의 동조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을 납득하게 해준다. 맥스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의 워릭을 탈취했을 때 맥스가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을 차에 싫었던 이유는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워릭에 올라 탄 맥스는 말 없이 차 안을 뒤지며 여기저기 숨겨진 총을 끊임없이 찾아 낸다. 동행을 함께 하기로 했음에도 신뢰를 보이지 못 하는 모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관건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퓨리오사의 경우도 맥스에게 자비를 구하려는 행동이나 구질구질한 구걸로 자비를 구하지 않는다. 그저 간결한 몇 마디로 서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 할 뿐이다. 그렇게 많은 총을 숨겨 논 것도 모자라 자동차 기어부분에 칼까지 숨겨둔 것을 보면 퓨리오사 또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예측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녀가 푸른장소로 왜 되돌아 가려 하는지 또한 구구절절 신파를 섞어 전달하지 않는다. 매우 효과적인 짧은 몇 마디만으로 퓨리오사의 목적을 관객들에게 이해 시킨다. 임모탄에게 세뇌된 워보이 눅스는 어떤가, 그가 퓨리오사를 광기에 차 추격하는 모습부터 변심을 하게 되는 과정까지 충분히 이해가 갈만큼 어색함 없이 잘 묘사하고 있다.     


영화가 후반부로 흘러 갔을 때, 맥스가 퓨리오사를 도와주는 이유도 간결하게 묘사가 된다. 맥스를 쫓아다니는 환영만을 보여줌으로써 맥스가 왜 퓨리오사를 돕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독백이나 퓨리오사에게 구두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맥스를 쫓아 다니는 환영을 맥스의 동기를 설명하는 장치로 사용 했을 뿐이다. 그 몇초 등장하지도 않는 환영(장치)은 맥스의 심경변화를 단번에 표현해 낸다. 영상미만큼이나 영화가 가진 대단한 또 다른 매력은 단연코 군더더기 없는 인물과 상황 묘사라고 본다. 인물들의 행동과 몇 가지의 장치만으로도 인물들이 가진 성격과 그들이 쫓는 성향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해 냈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표현 말고는 이 영화를 표현할 다른 방법은 없을 듯 하다.    



영화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페미니즘,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은 의미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샤를리즈 테론이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밝힌바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그리 밝혔으니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봐야 할 듯 하다. 하지만 페미니즘 영화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 인 것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것에 의문이 든다. 퓨리오사, 퓨리, 화가 나있다라는 영어단어에서 가져 온 듯 한 이름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논란을 던지지 않았을까 한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갖는 이미지는 화가 나 있다 일 수 있는데, 그런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지에서 얻어낸 개인적편견 일수도 있다.- 여하튼, 임모탄과 워보이들은 전형적인 마초로서 묘사가 된다. 전쟁광에 약자와 여성들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남자들의 전형이다. 이런 마초집단으로부터 도망치고 싸워 이겨 나간다는 개념으로만 보자면 매드맥스는 페미니즘 영화로 봐도 전혀 관계가 없을 듯 하다. 하지만 퓨리오사와 영화 자체가 페미니즘을 대변하는지는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맥스의 비중은 주인공이 맞나 싶을 정도로 퓨리오사에 비해 적어 보인다. 하지만 맥스가 차지하는 부분이 퓨리오사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의 구원자로서 등장한다. 원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퓨리오사와 동행하게 되고 후에는 퓨리오사가 그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며, 마지막에는 안락한 안식처를 얻기위해 싸우자고 퓨리오사를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퓨리오사와 그녀의 여성 동료들을 안식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료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맥스의 존재는 단순한 동료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퓨리오사를 도운 것 뿐이라고 결론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여러가지 설정 중, 특히, 맥스가 퓨리오사에게 수혈하는 장면이 갖는 메타포 또한 영화의 페미니즘 성에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눅스는 어떤가, 전쟁 미치광이였던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맥스와 퓨리오사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합류 뒤부터는 그들을 돕게 되는 역할을 넘어 맥스와 퓨리오사가 추격을 따돌릴 수 있게끔 희생자가 되어 장렬히 산화 한다



퓨리오사와 임모탄의 아내들이 페미니즘을 대변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의 목표와 안위는 남성의 도움과 희생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남성의 도움이 없이는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바가 뿌리 내릴 수 없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다. 퓨리오사의 고향 푸른장소는 어떤가, 아마조네스와 닮았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황폐된 땅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고립된 페미니스트들을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오게끔 한다는 의미로 봐야 되는 것일까? 남자처럼 싸우고 남자처럼 행동하는 퓨리오사와 그녀의 고향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페미니스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남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학문으로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이기에 깊은 의미를 찾아내지 못 했을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모습이 퓨리오사와 같은 전사의 모습이라면, 그들을 억누르고 차별하는 남성들 보다, 퓨리오사와 같은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비페미니스트 여성들을 먼저 설득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급선무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영화적인, 상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매드맥스 : 분노의 질주가 가진 매력은 페미니즘이냐 아니냐로 단순히 묻힐게 아니라고 본다. 이런 영화가 여성들에 의해 원해지고 실제로 여성관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강한 여성, 남성의 손을 떠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여성을 묘사한 영화들은 많았다. 하지만 유독 이 영화만이 페미니즘이냐 아니냐는 논란에 빠진 것을 보면 분명 강한여성을 내세운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점을 시사 하고 있는게 아닐까한다.




 

30년만에 후속편이 나왔다. 감독 조지 밀러와 배우 멜 깁슨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영화 매드 맥스는 30년이 지나서야 조지 밀러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매드 맥스 4편이 아닌 분노의 질주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만큼 전편들을 보지 않아도 이번 영화를 보는데 아무 지장은 없다. 하지만 지금만큼이나 파격적인 소재와 그로테스크한 영상으로 흥행몰이를 했던 전편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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