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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소설/영어

[입맞춤]

mohalka mohalka.com 2013.11.05 01:15

 

 

“김태평 이 개자식아!” 갑작스레 입술을 빼앗겼다. 나는 팔을 뻗어 녀석의 명치를 정확히 가격했고 이미 만취해 인사불성인 그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스러졌다. “진상!!! 진상이다……” 촬영팀의 다른 스텝과 함께 녀석을 숙소로 데리고 간 후 홀로 소주를 들이켰다. 캬! 청춘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다.

 

 

청운의 꿈을 안고 이곳 제주에 온지도 벌써 3년, 나는 언제나 드라마를 찍고 싶었다. 투명한 서귀포 백사장과 고급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사랑, 질투, 그리고 배신…… 현실은? 자체 편성권이 거의 없는 지역 민방에서 PD의 재량은 특산품 홍보 영상에서야 겨우 발휘될 수 있다. 야근, 회식, 그리고, 그리고 김태평 그 자식의 끈질긴 구애…

 

 

그는 작년부터 함께 일하게 된 촬영팀 막내다. 이름부터 무사태평인 그는 매사에 얼렁뚱땅 심드렁한 성격에 별일 없이 살고 싶어 하는, 딱 우리 회사가 원하는 인재다. 그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순간은 회식 매뉴를 정할 때, 그리고 나. 내게 고백하며 매달릴때다. 짬밥도 안되는게 누나, 누나하며 따라붙다가, 얼마 전 전체 회식해서 당당하게 외쳤다. “저는 송선배가 이상형입니다!” 하아. 그러더니 어제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만취한 채 숙소에 찾아와 따짜고짜 입을 맞췄다. 정말이지 엉망 진창에 타이밍 제로! 내 인생같다.

 

 

 

 

 

오늘은 북제주에 있는 흑돼지 농장에 간다. 출산의 순간을 담아 내야 하기에 아침부터 전 스텝이 분주히 움직인다. 녀석이 자꾸 거슬린다. 눈 밑에 멍은 어제 넘어졌을 때 생긴 건가? 내 짜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나를 보며 히죽거린다. 흑돼지는 8 쌍둥이를 낳았다. 순산이다. 까맣고 하얀 새끼 돼지가 꾸물꾸물 움직이는 모습이 귀엽다. 녀석이 또다시 내게 장난을 걸어온다. 새끼돼지를 어깨에 올려놓고 자꾸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다음엔 명치보다 확실한 급소를 찍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촬영 뒤 다시 회식, 오겹살에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흥겨운 분위기에 농장 주인 아저씨가 뱀 인형을 가져왔다. 제주 지역에서 출산할 때 거는 다산의 상징이라고 한다. 녀석이 또다시 즐거워한다. 하아. 조용히 술을 들이키는데 목에 인형이 감긴다. 녀석이 뒤에서 뱀으로 목을 조르며 웃는다. “끅! 끅끅끅! 우웨~엑!” 속에 잇던 내용물을 전부 토했다. 얼큰한 취기와 설움이 목을 타고 올라온다. “끄헝헝. 내 인생! 내 청춘이 이게 뭐야! 엉엉!” 눈물은 멈추질 않고 녀석은 조용히 등을 토닥여준다. “우웩~!” 그에게도 토사물이 튄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등을 두드려준다.


나는 팔을 비벼 눈물을 닦고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by Wo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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